철학 (작가별 분류)/Axel Honneth

악셀 호네트, ⟪인정: 하나의 유럽 사상사⟫_제4장

CucuClock 2023. 8. 1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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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칸트에서 헤겔로: 인정과 자기결정

2022.09.01. (목)

 

 지금까지 우리는 호네트의 작업을 따라가면서, 사람들 사이의 상호주관성에 대한 프랑스적, 영국적 분석을 살폈다. 프랑스 사상가들은 한 주체가 타자에 대해 주어졌을 때 자신이 아닌 것의 모습을 타자에게 내보이고자 하거나, 단순히 즉자적인 상태로 전락함으로써 자아상실마저 경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영국 사상가들은 같은 상황에서 검토되는 것은 개인의 자질이나 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방자한 품성’이고, 그들 안의 공평한 관찰자는 그들로 하여금 도덕적인 규범에 따를 동기를 공급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맥락들에서 인정은 동등한 두 주체에게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상호성의 사건으로는 거의 생각되지 않았다.” (154면) 인정이론에서 동등한 주체의 상호적 사건이 최초로, 비로소 다루어지는 것은, 칸트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적 맥락에서다. 

 프랑스의 부정적 인간학은 광고와 매스미디어, 브루주아지의 대두로 인한 ‘아무르 프로프르’에 대한 사색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리고 영국의 긍정적 공감 이론은, 사회가 상업화되어가는 가운데 도덕적인 규범을 어떻게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반면 독일은 그 인정이론의 발달에 있어서,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시대적 분위기에 있었다. 호네트의 글을 빌리면 아래와 같다.

 

어떤 내적 구심점도 없이 조각보처럼 정치적으로 여러 제후국과 몇몇 “자유” 도시로 쪼개져 있던 독일은, 주도권과 특권을 둘러싼 사회적 엘리트들의 전면적 투쟁 같은 것을 알기에는 충분히 중앙집권적이지 못했고, 자본주의적 심성의 전파에 대해서 단지 첫 예감 이상을 갖기에는 경제적으로 충분히 발전하지도 못했다. (155면)

 

 그러나 독일 사회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그것의 시민계급이 봉건적 지배구조 아래에서 별다른 정치적 힘을 갖추지는 못하였지만 ‘행정과 교육, 문화적 삶의 영역’에서 큰 책임을 지고 있었고 따라서 높은 신임을 누렸다는 것이다. 환언하면, 독일의 시민계급은 정치적으로 무력했으나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제 독일에서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해 제기되는 물음은, “시민계급이 정치적 평등과 공동 결정권의 획득을 통해 해방을 달성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것이었다. 

 호네트는 17세기에도 사무엘 푸펜도르프나 라이프니츠 같은 사상가들에게서 인정 개념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지만, 칸트로부터 출발하는 ‘세계 전체를 이성활동의 범주를 통해 파악하고자 하는’ 사조가 그 이전의 철학에 비해 몹시도 새로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4장에서 호네트의 논의는 칸트를 인정 개념의 선구자로서 놓고, 첫 인정 사상가로서 피히테, 나아가 인정 개념을 완성한 철학자로서 헤겔을 다루는 것으로 전개될 것이다. 

 

1) 임마누엘 칸트

 프랑스에 아무르 프로프르, 영국에 공감 범주가 있었다면, 독일에서 중요한 것은 존중 (Achtung) 범주이다. 호네트는 칸트가 그의 이성 비판 작업에서 이 존중 범주에 ‘매우 특수한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1781년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의 과제는 우리의 모든 이론적 인식이 선험적으로 주어진 범주들과 감각적 자료들이 종합된 것임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경험론뿐 아니라, ‘세계의 시간적 시초’와 같은 고전 형이상학의 문제들에도 제한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칸트는, 지식 형성에 대한 그의 이론으로부터 “다른 종류의 모든 인간 인식과 행위에 대해서도 그것들이 결국 인간 이성이 구성해 낸 성과임을 증명”할 것을 요구받는다. (160면) 이것에 따르자면 인간의 도덕적 행위 역시 실재 전체의 체계적 합리성 아래 한 부분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칸트는 이 요구에 답하기 위해, 프랑스의 선배 철학자들로부터는 개인적 자기입법의 아이디어를, 영국에서는 불편부당한 관찰자의 아이디어를 끌어 온다. 즉 칸트는 행위의 규칙 혹은 근거가 스스로 세워졌을 때 비로소 도덕적인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본 것이며, 또한 도덕적 자기통제란 자신을 불편부당한 관찰자의 위치에 세울 때 가능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칸트는 도덕적 행위가 인간 이성의 활동 결과임을 설명하기 위해 (이미 애덤 스미스에서 살폈듯이) 도덕적 이성이 “사고할 수 있는 모든 이성적 존재의 관점에서 도덕적으로 옳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과 동일하다고 본다. 

 

인간 정신은 규범적 규칙 혹은 “준칙”을 명령하는데, 우리가 동료 인간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옳게 행동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163면)

 

 그런데, 주체는 이성의 도덕법에 어떠한 동기에서 순종하게 되는 것인가? (도덕적인 것이 보편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판단으로부터, 그것에 따라야 한다는 동기가 곧바로 따라나오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존중’ 개념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호네트는 이성의 도덕법에 순종할 마음가짐 — 즉 동기부여 — 가 주체들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존중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본다.

 이제 칸트는 이성의 명령과 자연의 인과성 사이에 모종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 즉 “다음의 사정이 분명해져야 한다: 도덕적으로 행위하려는 사람들의 노력 속에서 우리는 이성의 명령이 그 자체로 요구하는 것이 구현되는 실례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을 존중하게 된다. (165면) 칸트가 설명하기를,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존중이 이성 자체를 통해 생겨난 감정이고, 자기의 이기심을 제한하는 가치를 표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덕 법칙에 대한 존중심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우리의 이성에 의해 파악된 도덕률이다. 그러나 도덕법의 가치는 동료 인간에 의해 감각적으로 구현되고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한 모든 존중은 본래 오직 도덕법에 대한 존중일 따름이다. 그 사람은 그 법의 실례를 제공해 준다.” (칸트, 도덕형이상학 정초, (AA)401, 각주.) 즉 호네트는, 칸트가 이기심 제한이라는 가치의 표상이 동료 인간을 통해서 발견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덕률에 순종할 동기를 갖게 된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도덕률에 순종하는 동기에 대한 문제의, 호네트의 상호주관주의적 독해인데, 호네트가 인정하기를 “이것은 칸트 연구에서는 매우 논쟁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호네트는 또한, 칸트의 이론을 피히테와 헤겔로 이어지는 단초로 파악할 이유가 충분하고 그 단서가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같은 지점에서 주장하고 있다.)

 

칸트에 따르면 도덕적 이성은 경험세계 내부에서 자연과 정신 사이에 다리를 놓는 어떤 것이 있을 때에만 동기부여적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다리 놓기를 존중이 해내야 한다. 칸트가 보기에 우리는 서로 상대방에게서 도덕법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인식하기 때문에 이미 언제나 상호적으로 이 존중심을 품고 있다. (171면)

 

 즉 자기 아닌 다른 사람들은, 이성에 의해서 파악된 도덕률의 경험적 대변자로, 사람들의 도덕적 동기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칸트의 존중 개념은, 말하자면 경험적 세계와 예지적 세계 사이, 또는 감각의 세계와 이론과 이성의 세계의 중간점에 있다. 

 

 그렇다면, 칸트의 존중 개념은 어떻게 후대의 철학자들이 인정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었는가? 첫째로 그것은 이기심의 제한이라는, 피히테와 헤겔에서도 일관되게 발견되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둘째로 그것은 ‘주체가 추구하는 인정이 아니라, ... 우리가 다른 주체에게 시인하는, 나아가 빚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인정’에 주목했다. 

 칸트의 이론은 타자에 대해 인정을 요구하는 주체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자신의 인정에 의무감을 느끼는 주체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도덕률의 예시적 구현인 타자 앞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와는 상관없이 존중의 감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칸트는 도덕법의 보편적 상호성의 관념을 선취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이기심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판단이 나 자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자기규정의 자유에 대한 아이디어 역시 그의 이론 안에서는 지켜지고 있다. 

 

2) 요한 고트리프 피히테

 피히테는 칸트에 대한 비판을 다음의 주장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대상 세계의 형성을 한낱 인식적 성취가 아니라 이미 언제나 활동하고 있는 자아의 명확한 실천적 성취로 표상해야 한다.” 절대적 자아는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질료를 이성에 의해 가공함으로써 자신의 자율성을 실현해 나간다. 호네트가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문제는, 피히테가 그의 이론의 어느 지점에서 개인의 복수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가이다. 

 그 지점은 다름아니라, 절대적 자아가 자신의 활동이 자유롭다는 것을 의식해야 할 때이다. 절대적 의식은 자기 혼자서는 자유로운 자신을 의식할 수 없다. 즉, 질료의 가공만으로는 자기의식에 관하여서 어떤 것도 얻어지지 않고, 자기의식이 가능해지는 것은 오직 비슷한 주체성을 가진 다른 존재와 만남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한 주체는 다른 주체에 대해 주어졌을 때 무엇을 경험하는가? 피히테는 칸트로부터 빌려온 선험론적 연역을 통해 자기의식의 필요조건을 발굴하고자 한다. 그는 그것으로부터 주체들 간의 관계를 법적 관계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 지점에서 피히테는 그의 ‘주체’를 다른 주체들의 집단 속에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피히테는 자신과 비슷한 다른 주체들의 존재를 깨닫는 때에 주체는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가를 해명해야 한다.

 다른 주체에 대해 주어진다는 것은, 그 주어진 주체가 ‘요청 (Aufforderung)의 수신자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요청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초청하거나 권유하는 언어 행위로서, 결국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187면) 요청의 수신자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피히테의 ‘요청’ 개념은 명령이나 요구 (Forderung)와는 다르다.

 이 요청이 성립하기 위한 요건은 아래 네 가지이다:

 

1) 수신자는 자연인과성에 의한 강제와 권유의 형식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요청받는 주체는 요청하는 주체의, 이성적인 주체로서의 성격을 알고 있어야 한다.

 

2) 수신자는 요청하는 자를 이성적인 주체로 인정하는 것을 넘어, 그의 요청을 자신의 자유로운 반응을 기대하는 발언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3) 수신자는 또한, 상대 주체가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였기 때문에 자신에게 요청의 발화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요청하는 주체가, ‘요청받은 사람의 잠재적 이해관심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이해관심을 제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 (185면)) 이 지점에서 피히테는 요청에 이미 ’자신의 이기심을 제한‘하는 의미에서의 ’존중‘이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4) 요청을 받은 주체 역시, 요청의 내용을 이행하고자 한다면 자유의 자기제한을 수행해야 한다. ‘타자가 자신의 발화로 수신자가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므로, 수신자도 이제 거꾸로 그 발화를 적절하게 이해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적 자유를 마찬가지로 자발적으로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186면)

 

 정리하면, “양자가 서로를 상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중 누구도 타자를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양자가 서로를 상호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로 대우하지 않는다면, 그중 누구도 타자를 그렇게 대우할 수 없다.” (186면, [전체 지식론의 기초]에서 재인용) 말하자면, 타인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도덕적 동기로서의 ‘존중’은 이미 피히테에서 성공적인 의사소통의 필요조건으로서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예지계와 현상계 사이의 어중간한 위치에서 설명되는 칸트적 ‘존중’을, 피히테는 ‘적극적 이성활동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고자 하는 주체의 노력으로 이전시킨다’. (190면) 다른 동료 인간의 말걸기에 적절히 반응해야 할 때, (혹은 더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언어사용에 있어서) 주체는 타자를 존중하고 서로를 자유로운 존재로서 상호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프랑스적 맥락에서는 자기상실, 영국적 맥락에서는 자기통제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딸려나왔다면, 피히테의 이론에서는 같은 것으로부터 ‘자유’의 관념이 최초로 따라나온다. 그러니까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요청을 매개로 하여서 ‘한낱 자연적이고 즉흥적일 뿐인 자유를 모든 사람의 자기결정 권리가 보장되는 현실로 전환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피히테가 상정한 ‘의사소통’의 원형은 경험적 세계의 그것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은 듯 보인다. 말하자면 피히테의 분석은 존재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순전히 이성철학적이기만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피히테가 교육 과정에서 인정의 경험이 예시된다고 주장하거나, 국가 시민의 계약을 상호인정의 결과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기는 했지만, 그의 분석은 여전히 (칸트적으로 표현하자면) 예지적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어서, 지나치게 선험적이라는 비판을 피하지는 못했다. 이 문제는 피히테보다 8년 어렸던 헤겔의 작업에 의해 해결될 것이다. 

 

 

 

3)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헤겔은 경험적 세계와 예지적 세계의 구분을 거부하고, 인정의 아이디어를 정신의 자기실현에 대한 체계를 발전시킴으로써 설명하고자 했다. 그에게 인정이란 ‘현상학적으로’ 완전히 자율적으로 되어 가는 정신의 발전과정의 하나였다. 그의 체계 속에서 모든 것은 어떤 경험적인 것과 만나야 했고, 그러한 헤겔의 기획은 피히테의 인정 모델을 세속적인 특성 속에서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예컨대 남녀간의 ‘사랑’은 서로를 자유로운 존재로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제공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의 이해관심을, (그것을 후원할 만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를 제한할 이유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때 사랑은 피히테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다분히 상호적인 과정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피히테에서는 초월적으로만 탐구되었던 인정의 형태가 헤겔의 체계 안에서 경험적인 무언가로서 예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상호인정의 한 형태에서 또한 산출되는 것은 다름아닌 상대의 자유이다. (피히테가 상호인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성활동이라는 개념이 최초로 산출된다고 생각했다는 것과 함께 보라.) 그것은 사랑이 ‘타자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라는 헤겔의 설명에서 드러난다. 인정을 통해 한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공적으로 지지받고 있음을 확인한다. 또한 인정하는 사람은 이해관심을 스스로 제한함으로써 상대가 그의 욕구와 바람을 실현할 수 있음을 자유롭게 보여주는 것이다. 즉 “사랑은 상호적이어야 하고, 상호보완적인 자기제한이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197면)

 

 헤겔의 인정 개념은 지금까지 살펴본 사상가들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이전까지의 철학자들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주어졌을 때 경험하게 되는 것 일반, 혹은 의사소통 일반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면, 헤겔은 몇몇 특정한 형태의 의사소통에서만 그가 ‘인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어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헤겔의 인정이론은 아무르 프로프르, 불편부당한 관찰자, 혹은 모든 형태의 언어적 의사소통과는 관련이 없고 순전히 규범적인 것이다. 헤겔에게 인정이란, “역사적으로 주어진, 정신을 통해 산출된, 인간 상호성의 형태”이다. 그것은 제도로 표현됨으로써, 사적으로만 느끼던 자유를 일반적으로 승인된 자기결정의 권한으로 이해될 수 있게 한다.

 

 헤겔의 이론은, 인정의 자유 보장적 역할에 대한 설명에서 이전에 비해 훨씬 강하게 사회이론적인 것이 된다. 이 지점에서 그의 이론이 맞는 변화는 두 가지인데: 첫째로 상호인정의 형식에는 ‘학습된 사회적 선호질서’가 포함된다는 것이고, 둘째로 ‘선호질서’에 의해 규범적으로 서열화된 속성들이 사회 갈등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헤겔이 인정에 대한 욕구 (혹은 욕망)를 가정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욕구는 이성의 주체성 실현에 대한 것으로, 주체의 자유를 외부 세계에서 강제 없이 실현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이 욕구의 실현을 위해서는 타자의 인정이 필요하겠으므로 (인정으로부터 자유가 따라나올 뿐 아니라, 또한 공인된다는 점에서) 인정이 결여된 주체들은 투쟁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